오렌지 껍질을 같이 넣고 셰이킹한 상큼상큼 사이드카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에게 바bar를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참... 거시기하다. 재벌 영화에 나오듯 비싼 '양주'와 과일을 늘어놓는 화려한 '룸', 혹은 예쁜 여자들이 술을 따라주는 그런 곳이 아니라고 설명을 하고 나서도, 요즘처럼 칵테일과 위스키를 쉽게 마주치는 시대엔 서울 시내 많고 많은 술집 중 어떤 것이 내가 좋아하는 바인지 설명하기가 애매한 거다. 비슷한 곤란함을 느낀 사람들이 클래식 바, 어센틱 바, 정통 바, 칵테일 바, 싱글몰트 바와 같은 이름들을 만들어 내는 것 같은데 정확히 어떤 기준으로 구분이 되는 건지를 속시원히 알기는 어렵다. 아마 역사가 짧고, 그런만큼 손님층도 한정적이고... 뭐 그런 탓이겠지.
차분한 매장의 모습ㅎㅎㅎ.
그런 와중에 내 나름대로 세워본 기준은: 싱글몰트 위스키를 비롯해 진, 보드카, 리큐르 등을 다양하게 갖추고 있고, 바텐더가 술에 대한 지식이 있으면서, 그때그때 손님의 취향과 기분에 맞는 칵테일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곳이 내가 좋아하는 바bar라는 거다. 징크는 그런 면에서 신기한 바다. 한남동, 청담동, 연남동처럼 바가 밀집된 구역이 아니라 온통 소주집 일색인 연신내에 문을 열었다. 저 유명한 동네들의 바만큼 술의 구색이 다채롭진 않지만, 싱글몰트 위스키에 발을 들일 때 각기 다른 개성적인 맛을 체험해 볼 수 있을 만큼은 된다. 나긋나긋한 글렌모렌지, 소독약 같은 라프로익, 단짠단짠 탈리스커 등 엔트리급 위스키들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었다.
게다가 더플레어 시절부터 일해오신 싸장님의 경력도 길어서, 새로운 칵테일을 발견하는 즐거움도 있었다. 메뉴에는 진토닉, 맨하탄 등의 간단한 칵테일들만 적혀 있지만 한 잔 두 잔 시키며 변태같은 입맛("일단 술은 쎄야 돼요, 단맛신맛은 별로고요, 특이한 맛일 수록 좋아요")을 내비쳤더니 메즈칼을 쓴 마가리타 온더락 변형과 파이널 워드처럼 잘 안 알려진 칵테일들을 만들어 주셨다. 사실 처음 오는 손님이 바에 앉아 다일루션이 어쩌고 스터가 어쩌고 쫑알쫑알하면 꼴 보기 싫을 법도 한데 경계하는 기색이라곤 전혀 없이, 어허허허 원만원만하게 대해주신 것도 좋았다.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느껴진 부분. ㅋㅋㅋㅋ.
스타 바텐더가 있는 화려한 곳도 좋지만, 술은 취하려고 냅다 들이키는 거라고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맛을 음미할 만큼 맛있는 술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요런 동네바도 필요하구나 싶다. 그래야 바를 찾는 손님들도 늘어날테고. 그러면 수입되는 술도 더 다양해질테고. 경쟁이 많아지면 가격도 좀 내릴지 모르고. ㅎㅎㅎ. 앉아있으면서 하나둘씩 들어오는 단골들을 살꼼살꼼 훔쳐보니 내가 처음 술을 배운 동네의 작은 바가 생각나서 마음이 훈훈해졌다. 저 먼 나라들의 신기한 술을 맛보면 여행하는 기분이 들기도 해서 아주 늦게 퇴근하고도 신나게 달려가던 곳인데... 이제는 문을 닫은 곳이라 동시에 헛헛하기도 하고... 징크는 부디 오래오래 자리를 지키며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이 되었으면 좋겠다. 뀨ง •̀_•́)ง.
주소: 은평구 연서로 27길 16-14 2층, 전화번호: 02-356-1002
가격: 칵테일 1-1.3만원, 12년급 싱글몰트 위스키 대략 1-1.3만원선, 커버차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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