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동 블라인드 피그의 맨하탄. 아마도...
위스키 베이스 칵테일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술. 많고 많은 위스키 베이스 칵테일(올드패션드, 러스티네일, 갓파더, 사제락, 페니실린...)중에서 유일하게 좋아하는 술이기도 하다. 이유인즉: 다른 술은 넘 달기도하고, 어쩐지 되게... 남성 잡지에서 시가를 물고있는 멋부린 남자... 같은 느낌이라 마셔도 마셔도 낯설었는데 맨하탄은 느낌이 다르다. 얇고 긴 마티니 글라스에 담긴 진한 붉은 빛깔의 자태가 넘 이쁘기도 하고, 버무스의 산미 덕에 맛도 한결 가볍고 여성스럽다. (사실 내가 원 베이스, 원 리큐르의 단순한 칵테일을 좋아하는 입맛도 크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맛도 맛인데 일단 등장할 때부터 아후 넘 이쁘다...
그러니까 맨하탄은 위스키(약 40도)에 스윗 버무스(약 18도)를 넣어 만드는 칵테일이다. 맨 처음 마셨을 땐 위스키를 약간 묽고 상큼하게 마신다는 느낌도 있었다ㅎㅎㅎ. 암튼 이름이 '맨하탄'인만큼 위스키는 버번/라이 등 미국 위스키를 쓰고, 버무스는... 버무스는 그냥 화이트 와인을 강화해 각종 향신료 넣고 만든 리큐르인데 국내엔 수입되는 종류가 많지 않아 어디나 비슷한 것들을 쓴다. 여기에 비터 양념 몇 방울 치고, 잔에 따른 후 레몬 껍질즙을 흩뿌린다. 마지막엔 체리로 장식. 보통은 마라스키노 체리를 쓰는데, 가끔 직접 말리고 절이고 한 체리를 쓰는 가게들을 발견하면 참 재미있다.
위스키/버무스/비터를 얼음과 함께 휘젓고 / 거름망에 받쳐 잔에 예쁘게 쪼르륵... @뿡갈로
재료가 단순해서 만들기 쉬울 것 같았는데 그래서 오히려 섬세하고 어려운 칵테일인 것 같다. 업장마다, 바텐더마다, 또 어떤 술을 썼는지에 따라 맛이 다 달랐다. 똑같이 재료가 달랑 두 개 들어가지만 버번콕/진토닉처럼 아무데서나 먹어도 중간은 가는 칵테일은 아니다. 아무튼. 내 취향엔 버번보다는 라이 위스키가 맛있었다. 라이는 다른 것들과 실컷 섞여도 뚫고 나오는 특징적인 달큰함이 있다. 처음 뿡갈로에서 불릿 라이로 만든 맨하탄을 많이 마셔서 그런지... 그 맛이 내겐 가장 익숙하고 매력적이다. 잔을 받아서 몇모금 마시다보면 레몬 향이 조금씩 걷히고 맨하탄의 맨 얼굴이 나오는데, 버번으로 만든 잔은 이때 좀 심심했다. 버무스의 차이는 아직 잘 느끼지 못하겠고, 고작 몇방울 들어가는 비터가 참 재미있었다. 어떤 비터를 쓰느냐에 따라 입에 남는 인상이 달랐는데, 그 차이가 느껴질 때 기분이 좋다. ㅎㅎㅎㅎ.
판교 나잇스틸러의 롭로이. w/조니워커 블랙
얼핏보기에 똑같은 롭로이는 맨하탄에서 위스키만 바꾼 칵테일이다. 미국 위스키를 스카치 위스키로 바꾸면 롭로이가 되는데, 스카치 위스키의 세계가 워낙 어마어마한고로 맨하탄보다 더 맛이 다양해야할 것 같지만... 내가 맛본 롭로이는 모두 훈제/피트향을 살리는 쪽이었다: 주문할 때 별말없이 가만 있으면 보통 조니워커 블랙/더블블랙이 베이스로 많이 나왔고, 아일라를 좋아한다고 말씀드리면 보모어, 라프로익10, 라프로익QA 등이 쓰였다. 근데 내 취향엔 피트향이 단맛/신맛과 섞이는 게 영 이상하다. 마치 초콜렛과 감자칩을 한 입에 먹는 느낌??? 가끔은 쇠맛이 나는 것도 같았다. 아, 향이 비교적 다채롭고 부드러운 보모어로 만든 롭로이는 괜찮았지만, 그래서 라가불린으로도 롭로이를 마셔보고싶지만, 가격을 생각하면... 그냥... 아일라는 단독으로 마시는게 좋은 것 같다. (ㅡ덧: 롭로이는 글렌드로낙/맥캘란 등 셰리 캐스크 숙성 싱글몰트로 만들었을 때가 제일 맛있었다! 나무맛이 고상하고 섬세한 그런 느낌ㅎㅎㅎㅎ)
쓰면서 다시금 깨달은 나의 취향 요약: 맨하탄은 라이로, 롭로이는 셰리 위스키(?)로, 아일라는 단독으로. 아, 지난 1년간 열심히 술 마신 보람이 있다.
'🥂 술 > 칵테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칵테일 - 마티니&더티 마티니 (16) | 2017.03.17 |
---|---|
겨울에 어울리는 따뜻한 칵테일 (12) | 2016.12.22 |
칵테일 - 베스퍼 마티니 (27) | 2016.10.27 |
칵테일 - 네그로니Negroni (8) | 2016.10.14 |
칵테일 - 아이리쉬 카밤Irish car bomb (10) | 2016.09.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