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이리쉬 커피 Irish Coffee
차가운 크림이 엄청나게 달달꼬소한 아이리시 커피 @망원 카페 동경
아이리시 커피는 유래가 전해지는 신기한 칵테일이다. 아일랜드 공항에서 비행기가 결항된 추운 어느 겨울날, 근처 식당?의 요리사가 낙담한 승객들을 위해 커피에 위스키를 넣어 냈다고 하는데 마침 그 중 여행 작가가 있어 미국으로 돌아온 후 그 뜨끈한 위스키맛 커피 이야기를 여기저기 써서 널리 알린 것이라고 전해진다. 당시 이 작가는 동네 바에서 커피 위로 크림을 동동 띄운 비법을 알아내려 엄청난 시도를 했다고 한다ㅎㅎㅎ. 이런저런 자료를 보면 크림을 48시간 숙성한다는 말도 있고, 설탕을 넣어야 크림이 뜬다는 말도 있고... 노력의 흔적이 많다. 근데 사실 커피에 생크림을 올리는 건 중유럽에서 훨씬 이전에 유행하던 방식이었고, 19세기 프랑스엔 이미 커피와 고도주를 섞어 마시는 음료가 있었으므로(마담 보바리에도 언급됨) 독주를 넣은 달콤한 커피는 언젠가부터 그냥 곳곳에 있었음직한 음료인 것 같다.
아무튼. 따뜻하고 달콤한 당충전 음료가 간절한 날, 나같은 술꾼은 카페 모카나 아인슈페너 대신 아이리시 커피가 먼저 생각난다. ㅎㅎㅎㅎㅎ. 잔을 들어 입술에 대고, 달콤한 생크림 사이로 (술 같은) 커피가 흘러나오는 상상을 하면 아으 정말 행복하다. 그래서 아이리시 커피를 파는 카페는 일단 호감도가 무조건 올라간다. 집에서 만드는 경우 포인트는 커피를 진하게 타고, 술은 휘젓거나 섞지 않고 커피 위로 조심스레 붓는 것. 꼭 에스프레소가 아니어도 되지만 커피가 연한 아메리카노의 수준이면 설탕과 술, 크림의 맛을 이기지 못하고 흐리멍텅하게 된다... 술은 커피와 고르게 흔들어 섞는 경우가 많은데, 대충 붓고선 섞지 않는 게 내 입맛엔 더 재미있었다. 집에선 띄우기 어려운 생크림 대신 적당히 우유거품을 올려도 담백하니 맛있다. 위스키+설탕 대신 베일리스를 넣어도 간편하니 맛있고. 아, 잠 안오는 새까만 겨울 밤에 어울리는 칵테일.
2. 핫토디
납크릭 2온스♥/뜨순 물/설탕 시럽/아니스/계피/레몬으로 매큰달달하게 만든 토디 @신천 비바
핫토디는 소맥내지는 김치찌개만큼이나 만드는 방식이 정해져있지 않은, 저마다 각양각색인 칵테일이다. 만드는 방법은 아이리시 커피보다 간단하다: 뜨거운 물에 유자청 타듯 위스키/브랜디/럼 등의 독주를 붓고 레몬/꿀/계피(/아니스/클로브...) 등 원하는 향신료를 더해 휘휘 저으면 끝.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비오는 날이나 추운 날, 아님 감기 걸린 날에 한 잔씩 타 마신다고 하는 걸보니 마치 프랑스의 뱅쇼같은 느낌인 것 같았다. 요즘같이 쌀쌀한 저녁, 바에 딱 들어가 앉자마자 따끈한 토디를 한 잔 들이키면 칼칼한 목도 가라앉고, 차가운 손도 금방 따뜻해진다. 그렇게 몸을 녹이면 아무리 춥고 피곤한 날에도 술을 마실 기운이 살아나기 마련! ㅎㅎㅎㅎㅎㅎ.
외국인 친구에게 물어보니 뜨거운 물 대신 홍차나 민트티를 쓰는 경우도 많다고 하고, 자기는 진저 에일을 쓰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보니 심지어 리슬링으로 만드는 토디 레시피도 있었다. ㅎㅎㅎㅎㅎ; 머그에 나오는 큼직한 토디는 보통 내겐 좀 묽었는데, 차나 에일을 쓰면 풍미가 훨씬 살아서 맛있을 것 같기도 하고 이상할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위스키도 정해진 건 없지만 나는 고를 수 있다면 라이나 버번으로 만든 토디가 좋았다. 이상하게 기침이 안 떨어지는 올겨울, 다음주 즈음엔 피트향이 좀 있는 탈리스커나 하이랜드 파크 등으로 도전해 볼 생각이다.
(예전, 여름 장마철에 미스터칠드런 옆자리 손님이 마신 토디는 불붙여 쓰로잉해서 만든 것 같았는데... 착각일까...?)
시바스리갈에 꿀/레몬/계피 스틱/생강칩 등을 넣은 핫토디 @상수 곤조
3. B&B (Brandy & Benedictine)
불쑈!!!!하시는 사장님ㅋㅋㅋㅋ @신촌 바코드
B&B는 사실 항상 따뜻하게 만드는 칵테일은 아니다. 원래 레시피는 브랜디와 베네딕틴을 섞어 만드는 술인데, 따뜻하게 만들면 브랜디의 향이 풍성하게 살아나기 때문에 데우는 경우가 많다. 이 때는 뜨거운 물을 넣은 잔의 열? 수증기?로 중탕하기도 하고, 위 사진처럼 화끈하게 불붙여 쓰로잉하는 방법도 있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뜨끈하게 만들면 눈이 시리고 코가 뻥 뚫릴 만큼 알콜 기운이 강하게 올라온다... 향은 화려해지는 반면 맛은 옅어지는 것도 또다른 특징. 40도 이상의 술을 1:1로 섞어 만들기때문에 위의 아이리쉬 커피, 핫 토디보다 도수도 많이 높다. 앞의 두 개는 사실 술을 조금 끼얹은 음료, 남녀노소 마실 수 있는 음료(???)라면 B&B부터는 본격 술꾼 칵테일이랄까. ㅎㅎㅎ. 같은 포도로 만드는 브랜디 때문인지 어쩐지 뱅쇼와도 닮은 까끌한 포도 껍질의 인상과 단맛이 좀 있다. 왠지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 벽난로 근처에서 마셔야 될 것 같은 술... 아무튼 확실한 술기운이 필요한 날엔 B&B. 위스키를 마신 날, 칼바람 부는 밖으로 나서기 전 몸을 데우는 마지막 잔으로도 잘 어울린다.
귀여운 찻잔에 담긴 B&B. @신촌 바코드
4. 스키랏지 Ski Lodge
그랑 마니에르에 불 붙여 휘휘휘휘... @경복궁 코블러
스키랏지는 위의 B&B에 오렌지 리큐르인 그랑 마니에르를 더한 칵테일이다. 스키 산장?이라는 이름처럼 겨울 눈덮인 산 속에서 호호 불며 마실 것 같은 따뜻하고 달큰한 술. 사실 도수는 비등비등하지만 B&B에 상큼한 오렌지 향과 단맛이 있어 조금 더 여성스럽다. 코블러의 스키랏지는 특이하게, 따뜻한 커피와 (던킨)도너츠와 같이 나온다. 사장님께서 예전에 호텔에서 일하실 때 이렇게 드시던 게 제일 맛있었어서 만드신 메뉴라고... ㅎㅎㅎ이야기가 있는 칵테일은 항상 재밌다. 그리고 술이 달아서 커피와 아주 잘 어울린다. 커피의 카페인 덕에 더 술기운이 더 빨리, 또렷하게 도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사실 코블러의 스키랏지는 그랑마니에르만 잠깐 불 붙여 향을 살리고 상온의 B&B에 붓기 때문에 따뜻하진 않다. 비바에선 불붙여 쓰로잉하던 걸 보니 만드는 방법은 역시 가게마다 차이가 좀 있는듯. 달달한 편이라 내 취향은 아니지만 B&B보다는 추천하기 쉬운 칵테일인 것 같다. (업투데이트와 더불어) 그랑 마니에르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칵테일인 것도 같고. 이건 개중 가장 달콤한, 당 충전용 겨울 칵테일.
뒷쪽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까만 도너츠, 커피와 같이 나오는 스키랏지 @경복궁 코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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