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잡을 데 없던 라스트 워드!
내가 사랑하는 보사노바가 시종일관 흘러서, 그리고 거기에 벽이고 테이블이고 온통 나무만 단정히 짜넣은 다른 바들과 달리 맨들맨들한 까만 돌, 색색이 돌아가는 조명이 옛날 라운지 바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서 여유롭고 인상적이었던 곳. 바 테이블 뒤로는 신발을 벗고 올라가 철푸덕 앉을 수 있는, 앉은뱅이 테이블과 쿠션이 깔린 마루 자리도 있었다. 전체적으로 지나치게 단정하거나 세련되지 않은, 2000년대 중후반의 느낌이 있는데 촌스럽지 않고, 자리에 앉자마자 마음이 푸근한 게 아, 오길 잘했다 싶었다.
유일하게 아쉬웠던 스테이크. 한가운데는 촉촉한데 바깥쪽이 너무 퍽퍽했다.
재료가 특별할 것 없어 맛의 균형이 잘 보이는 라스트워드, 행키팽키, 에비에이션을 쭉 마셨는데 만족스러웠다. 딱히 어떤 방향이 좋다고 미리 귀뜸을 한 것도 아닌데 쓴맛, 신맛, 단맛, (역한) 술맛 뭐 하나 도드라지는 게 없이 내 취향에 딱 맞았다. 페니실린과 라프로익 쿨러 같은 위스키 베이스 칵테일도 맛이 섬세했고, 디플로마티코를 쓴 시그니처 칵테일도 재미있었다. 막연한 단어 두어개로 표현한 맛과 느낌을, 싸장님이 찰떡같은 솜씨로 엮어서 옹골찬 칵테일을 턱턱 만들어 내셨다. 빠듯한 내 형편에도, 주먹만한 잔 하나에 2만원이 넘는 돈이 아깝지 않았다.
아닌게 아니라, 여기선 음료의 맛에 대해 시시콜콜 대화하는 데 적극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모든 바는 개개인의 입맛에 맞춰 술을 만든다지만 사실 어떤 술에서 무슨 맛이 나는지, 이 칵테일에선 어떤 맛을 내기 위해 무엇을 얼만큼 어떻게 조합하는지...를 물으면 간략히, 적당히 답하는 바텐더가 대부분이고 대충 웃어 넘기거나 '이쪽에서 일하세요...?'라고 묻는 경우도 많다. 손님(비전문가)이 그렇게까지 관심이 있는 경우는 드무니 불필요한 디테일이라고 판단해 설명을 최소화한 걸 수도 있고, 노하우를 지키고 싶거나 혹은 단순히 귀찮은 걸 수도 있는데 여기선 이 재료로 무엇을 의도했는지, 계절감을 맞추기 위해 무엇을 더 강조했는지 등이 술술 흘러나왔다. 술맛에 관심이 많은, 술 이야기에 목마른 '덕후'라면 갈증을 해소할 수 있을듯!
근처 다른 술집에 비해 가격이 비싼 점이 아쉽지만 그건 초라한 내 월급 탓이겠거니... ㅜㅜ
여유로운 분위기에 반듯한 술맛과 접객이 두루두루 훌륭해서 맛있고 기분좋은 시간 보내고 나왔지만, 톡 튀는 면이랄까... 마음을 건드리는 부분이 없어선지 인상이 살짝 흐릿하기도 하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예사로이 거리를 지킬 것 같은 그 반듯함 덕에 아무도 날 모르는 곳에서, 혼자 조용히 술 마시고 싶은 날엔 선뜻 발길이 닿을 것 같다.
주소: 마포구 어울마당로 5길 7 ㅡ지하 1층, 전화번호: 02-337-3133
가격: 칵테일 약 1.8-2.5만원, 스테이크(230g) 3.8만원, 위스키 비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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