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번 위스키에 관해서: NDP, 비증류생산자들

정체를 쉬쉬하는 NDP와 달리 축제까지 있는 독립병입업계 

출처: Douglas Laing(링크)





 위스키의 본고장 스코틀랜드에는 '독립병입Independent Bottling'이라는 개념이 있다. 맥캘란, 글렌피딕 같이 대부분의 증류소에선 보리를 가지고 직접 술을 빚고 익히지만, 독립병입자들은 이런 증류소에서 술을 사다가 직접 숙성, 병입해서 판매한다. 증류소 입장에선 자기네들의 평소 제품과 다른 맛의 술이 나왔을 때, 혹은 그냥 돈이 좀 필요할 때 융통할 수 있으니 좋고, 독립병입자 입장에선 대규모 설비 투자를 할 필요없이 다양한 맛의 위스키를 만들어 볼 수 있으니 좋은 일이다. 일반 소비자들에겐 잘 알려져있지 않고, 마니아들이나 찾아 마신다는 점에서 일종의 '인디' 위스키라고 할 수도 있겠다.


 미국에도 직접 위스키를 만들지 않고 술을 사다가 숙성/병입해서 파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독립병입자라기보단 보통 비증류생산자NDP, Non Distilling Producers라고 불린다. 그리고 독립병입의 개념이 '마니악한', '재미있는' 정도의 뉘앙스를 달고다니는 것에 반해 비증류생산자는 부정적인 함의를 갖는 경우가 많다. 이유인즉, 독립병입자들은 보통 술의 출처를 밝히고, 밝히지 않을 때에도 <우리는 술을 딴 데서 사왔으나 정확히 어디인지는 알려주지 않겠음>이라고 명시하는데 반해 미국의 비증류생산자들은 은근슬쩍, 마치 자기네들이 만든 것처럼 홍보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3대째 내려오는 제조법으로 장인들이 손수 빚은 술>이라고 해서 샀는데, 알고보니 유명 대기업에서 사온 술이라는 걸 알게된 미국 술꾼들의 분노는 NDP로 검색하면 쉽게 찾아볼 수 있다(링크).


 바다 건너 저 먼 나라의 위스키 사정이 무슨 상관이냐 싶지만, 굳이 이 글을 또 쓰는 이유는ㅋㅋㅋㅋ 미국 비증류생산자들의 소비자 기만을 서울에서 술마시던 나도 느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위스키 좀 마신다하는 술꾼이라면 한 번은 맛봤을 불릿Bulleit의 제품들. 이전 글에서 전했듯 호밀 위스키는 물론이고, 버번 역시 직접 만든 술이 아니다. 자신의 증-증-증조할아버지가 1800년대에 만든 호밀 위스키 제조법을 복원하기 위해 직장을 때려치고, 삶의 모든 것을 걸어가며 위스키 증류에 전념했노라고 선전하는 불릿의 창립자. 하지만 유명 브랜드인 Four Roses의 원액을 사다가 파는 것은 불릿을 소유하고 있는 주류 대기업인 디아지오에서도 밝힌 내용이다[각주:1](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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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에서 만들었건 간에 불릿 버번은 자타공인 맛있는 술인데, 왜 그렇게 술의 출처에 대해 입 꼭 닫고 쉬쉬하는지 개인적으로는 참 의아할 뿐이다. 여러 미국 술꾼의 증언에 따르면 불릿이 대형 증류소(Stitzel-Weller)를 구입해 방문객 투어 프로그램을 마련(2015)하기 전에는 "당신네들 증류소를 구경할 수 있냐"는 질문에 "우리는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답했다고 한다. 마치 우리가 증류소가 있긴 있는데 공개만 할 수 없다는 듯이. 이런 식의 회피, 오도로 소량 생산(small batch), 증조 할아버지의 레시피(inspired by great-great-grandfather),인생을 바친(risked everything) 위스키라는 정감있는 이미지를 지키려는 것이 참, 예뻐보이지는 않는다.




라벨엔 떡하니 1753을 적어놨다. 

당장 판교 와인앤모어에도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위스키'라고 선전하고 있음[각주:2]...

 




 서울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미터스Michter's 역시 구설수에 많이 오른 술이다. Michter's (aka Bomberger's)는 20세기말까진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증류소로 유명했던 곳이지만 1989년 이후론 가동되고 있지 않다. 유서깊은 Michter's가 망한?뒤, 뉴욕의 Chatham Imports라는 중간거래상이 냉큼 상표권을 사들여 현재 사업중인 미터스.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마치 자기들이 예전부터 이어 내려오는 Michter's인것처럼 구구절절한 역사와 사명을 그리고 있지만 실제 직접적인 연관이 없음은 물론이고, 스스로 증류하는 술마저도 없다[각주:3]. 그리고 현재 판매중인 다양한 버번, 라이 위스키를 정확히 누가, 어디에서 생산했는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링크)


 Wine Enthusiast라는 잡지의 편집자는 미터스가 증류소는 없을지언정 다른 증류소와 계약을 맺고 직접 레시피mashbill를 발주하며 증류과정 전반을 감독하고 있으므로 생산자distiller가 맞다고 주장하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는 분위기다(링크). 미국 위스키 시장의 관행상 <이러이러한 방법으로 술을 증류해달라>는 맞춤 제작일리가 없고, 각 증류소에서 이미 만들고 있는 술을 받아오는 것일 거라는 게 요지. 어떤 쪽이 사실이든 간에, 미터스를 직접생산자distiller라고 인정하기는 어려워보인다. 이런 와중에 재미있는 건 미터스가 2012년 Wine Enthusiast에서 주관한 '올해의 생산자Distiller of the year'상을 받았다는 거다(링크). ㅋㅋㅋㅋㅋ. 





 마지막 기만자는 좀 생소한 위슬피그Whistle Pig. 2013 World Whisky Awards에서 Sazerac을 제치고 Best American Rye Whiskey로 뽑힌(링크) 이 술은 심지어 100% 캐나다에서 만들어져 논란이 있었다. Vermont에서 만들었다고 홍보하지만 실제 해당 시설에선 병입/숙성할 뿐이라고. "캐나다에서 증류했으면서 어떻게 미국 위스키냐"는 질문엔 "곡물rye을 우리가 재배했고, 오크통의 나무도 우리 지역 것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고 한다(링크). 또 2013년에 상을 받은 라이 위스키는 11년 숙성 버전인데 당시 브랜드가 생긴지는 5년, 창립자가 시설을 구매한지 6년밖에 안 됐을 시점인 것도 논란이 됐다. 






 그리고 당시 미국 소비자들을 성나게 한 위슬피그의 마지막 기만 포인트는: 메이커스 마크의 증류 책임자Master distiller였던 유명인사 David Pickerell을 고용한 것. 음, 정확히는 고용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정작 그가 만든 술은 한 방울도 맛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지금이야 술을 얼만큼 어디서 사오는지 밝히고 있지만 몇년 전 미국 위스키 블로거들의 기록을 보면, 다른 브랜드처럼 생산지와 생산자에 대해 어물쩡 넘어간 적이 많다고 한다(링크/링크). 아무튼 그래서, David Pickerell이 위슬피그에서 증류한 술이 20%[각주:4] 들어간 위스키, FarmStock Rye Crop One은 올해서야 출시됐다(링크). David Pickerell의 인터뷰(링크)를 보면 언젠가는 FarmStock을 100% 자기네들의 술로 만들겠다고 다짐한다. 언젠가는... 




 불릿이야 맛있어서 나도 여러 병 사다 마신 술이고, 맛본 적 없는 미터스도 위슬피그도 그렇게 많은 상을 타는데는 이유가 있으리라 짐작한다[각주:5]. 이 글은 위의 술들이 맛이 없다, 마시면 안 된다, 를 말하는 것이 절대 아니고, 위스키 회사들이 선전하는 곧이 곧대로 증류소의 역사와 술의 출처를 믿으면 안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리려고 썼다. 더불어 상술에 기만을 느낀 소비자로서는 라벨에 원료, 원산지(증류된 곳), 생산지(숙성/병입된 곳)을 모두 명시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바이지만 저 먼 나라 사정에 내가 영향을 끼칠 수는 없겠지요...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읽어볼 만한 글을 하나 소개하는 걸로 끝내야 겠다: Sourcing, Labeling & Lawsuits: Why American Whiskey Should Improve Its Labels(링크). 뿅!





  1. 디아지오 press release는 최근 3년간의 자료만 공개하므로 1차 출처는 찾을 수 없고 ㅠㅠ 인터넷에 '그렇노라'는 언급은 수도없이 많다. Esquire에도 등장한 내용이니 이정도면 진위가 보장될라나... [본문으로]
  2. 심지어 현재 미터스(2004년 첫 출시) 나이보다 많은 20년 숙성 위스키를 팔고 있다. 가격은 620만원. 다른 곳에서 사온 거면서 마치 1753년부터 쭉 만들어온 척 소비자를 기만하는 게 좀 보기 싫다... [본문으로]
  3. 새로운 기계를 설치하고 어쩌고 한 증류소가 Shively, Kentucky에 있다는 언급을 홈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지만 여기서는 위스키가 'processed and bottled' 된다고만 언급하고 있다. 이 증류소에서 만든 술이 유통되기 시작했다는 증거, 발표등은 아직 없다. [본문으로]
  4. 그리고 캐나다에서 사온 술 5-6년 숙성분 49%, 12년 숙성 MGP 31% [본문으로]
  5. 미국의 한 유명 블로거는, 홍보에 기만이 있긴 하지만 그 300년된 원조 생산자보다 현재 Michter's가 훨씬 맛있다고 평하기도 했다.(http://www.cooperedtot.com/2014/03/considering-michters.html?m=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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