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번 위스키에 관해서: MGP, LDI를 들어보셨나요?

▲이미지 출처: thewhiskybarrel.com



(제일 밑에 *간단 요약이 있어요)



 예전에 귀한 위스키가 많은 바에서 독립병입자의 3년, 5년 숙성 위스키를 맛본 적이 있다. 빛깔부터 허여멀건해서였는지, 이미 오른 취기 때문이었는지... 위스키답지 않게 가볍게 찌르듯 날카로운 맛에 놀랐지만, 더 놀라운 건 어째 향도 진gin마냥, 허브향이 강했다는 거다. 허브류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아무튼, 이제껏 마셔온 위스키와는 동떨어진 낯선 향이었다. 그때 느낀 건 위스키는 진짜... 나무 주스라는 거다. 미국(버번)이든 영국(싱글몰트)이든 위스키는 왜 꼭 일정 기간 이상 참나무통에서 숙성해야 한다고 규정하는지 와닿았다. 그 나무통 담겨 오랜 기간 묵어야만 비로소 위스키라고 인지할만한, 바닐라/호박/꿀 등등의 묵직달달한 향이 입혀지는 거였다(링크).


 <위스키에서 숙성이 맛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어느정도 체감해본 만큼 쉬이 인정한다. 그렇지만 그 오크통에서 배어나오는 맛이 위스키의 전부일리는 없다. 어떤 곡물을 어떤 비율로 쓰는지(mashbill), 어떻게 당화/발효/건조하는지(malting), 어떤 소재/모양의 기계로 어떻게 증류하는지도 모두 맛에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당장 버번과는 또 다른, 라이 위스키의 날선 단맛은 다른 원료(옥수수 대신 호밀)에서 나오고, 아일라 위스키의 매니악한 소독약 냄새는 건조 방법(피트, 스코틀랜드의 특정 식물 퇴적층을 태운 향)에서 온다는 것만 떠올려봐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위스키 맛에는 숙성만큼 원료와 증류 방식이 큰 영향을 미친다. 이 당연한 사실을 길게 늘어놓은 것은, 시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다양한 버번/라이 위스키 중, 사실은 같은 원액으로 만들어진 술이 많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다. 대표적으로, 위스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마셔봤을 법한 불릿Bulleit, 리뎀션Redemption, 윌렛Willett, 프리차드Prichard, 하이웨스트High West, 템테이션Temptation 등 브랜드의 라이 위스키는 모두 MGP라는 대규모 증류 회사에서 만든 원액을 공급받아 만든 술이다(링크). 




▲이미지 출처: MGPI Inverstor Presentation



 인디애나주에 위치한 이 증류업체는 1847년에 설립되어서, 세월에 따라 씨그램Seagram과 페르노 리카Pernod Ricard 같은 대기업에 인수되었다가... 계속 소유주가 바뀌어 2007년에 Lawrenceburg Distillers Indiana(LDI)로, 2011년에는 MGP(Midwest Grain Products of Indiana)로 이름이 변경됐다. 이전까지는 대중에게 거의 정보를 밝히지 않고 비밀스럽게 영업했으나, MGP로 바뀌면서부터는 현재 생산중인 위스키의 모든 제품군과 레시피(곡물 함량/비율)를 밝히고 있다(링크). Alcohol란을 보면 생산중인 위스키가 12종인데, 다 파고들기엔 정신이 없으니 일단은 제일 눈에 띄는, 95% 호밀 위스키(Straight Rye Whiskey)를 집중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뀨.



 물론, MGP가 생산중인 다양한 mashbill의 위스키를 어떤 브랜드에게 공급하고 있는지까지 홈페이지에 명시하고 있진 않다. 하지만 라벨과 홈페이지에 적힌 텍스트를 꼼꼼히 뜯어본 후 약간의 추론을 더한다면, 어느 브랜드의 라이 위스키가 MGP에서 생산되었는지 밝혀내는 건 어렵지 않다. 일단, 라이 위스키 열풍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며(2010년 전후), 스트레이트 라이의 경우 적어도 2년 이상 숙성이 규제 조건인데 윌렛/불릿/리뎀션의 95% 라이 위스키 출시 시점은 각 2008/2011/2010년이다. 뭐, 워낙 큰 회사들이니 트렌드를 내다보고 미리 준비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윌렛, 불릿, 리뎀션은 병/박스 한구석에 'Distilled in Indiana' 'Distilled in the Indiana Heartland' 'Lawrenceburg, Indiana'라는 문구를 항상 달고있다. 각 회사가 인디애나에 증류소를 갖고 있는지까지 따져보면, 답은 확실해진다.



▲이미지 출처: DeutschFamily.com




 독자적으로 증류한 술과 섞든, 따로 추가 숙성을 한들 일단 미국 시장에서 MGP의 원액을 쓴다고 알려진 상품을 다 꼽으면 데스크탑에서 한참 스크롤을 내려야할 만큼 많다(링크). 그리고 더 놀라웠던 건, 위에서 꼽은 윌렛/불릿/리뎀션 라이는 '스트레이트 라이 위스키'인 만큼, MGP의 원액을 가져다 따로 블렌딩을 하지 않고 고대로 내놓은 위스키라는 거다. 물론 세 제품의 맛이 동일하다고 주장하려는 건 아니다. 각 제품은 추가 숙성이든 뭐든 자체적인 'finishing'을 했다고 선전하고 있다. 그런데 스트레이트 라이의 규정 중에는 숙성 캐스크와 첨가물에 대한 부분이 있다: 


 Straight rye should be aged in new charred american white oak barrels.

 Straight rye may contain no added colorings, flavorings, or additional spirits.


 그러니까 하나는 나무를 잘라 붙여 내부를 태운(, 다른 술을 담지 않았던) 미국 참나무통을 써야 한다는 거고, 두번째는 색소와 각종 첨가물flavoring을 비롯해 다른 술을 섞지 말아야 한다는 거다. 불릿/윌렛/리뎀션에서 자체적인 무언가를 한다고 치자. 근데 어차피 동일한 품종의 새 나무통을 써야하는 마당에, 각종 착향료나 조미료를 넣을 수 없는 상황에서 얼마나 큰 맛의 차이를 낼 수 있을까? 비전문가라 그런지, 나는 숙성 기간과 희석한 정도(완성품의 도수)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뾰족한 수가 없다.



▲라벨 변경 전후, 이미지 출처: justmalt.com



 이 모든 사태를 하나하나 알아보다 가장 충격을 받은 부분은, 많은 브랜드들이 따로 원액을 공급받고 있음을 명시하지 않는 데에 그치지 않고, '금주법 시대의 비밀 레시피'에 따라 소량 생산된다는 식으로 적극적 기만을 하고 있다는 거다. 실제로 Templeton은 MGP의 원액을 가져다 쓰면서 'Pre-prohibition era recipe', 'small batch'와 같은 단어를 라벨에 표시하다 소송에 휘말려 해당 문구를 삭제하고, 'Distilled in Indiana'를 추가하게 됐다. Templeton은 Iowa에 자체 증류소를 갖고 있기는 하니, 스스로 라이 위스키를 안정적으로 생산해낼 때까지만 MGP를 가져다 쓸 생각이었다고 구차하게나마 변명이라도 하지만 다른 브랜드들은... 절레절레...


 퇴근시간이 다가오니 급하게 마무리를 해야겠ㄷㅏ. 이 글은 불릿/윌렛/리뎀션을 까내리기 위해서가 아니고, 위스키를 마시는 사람들이 알아두면 좋을법하다고 생각해서 썼다. 내가 마시는 이 술이 어디서 만든 건지, 다른 병에 담겨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저 술들이 정말 다 달리 만들어진 건지 정도는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서. 해외에서는 한물 간 이야기지만 우리말 자료는 없는 것 같길래... MGP에서 술을 공급받는다고 알려진 브랜드의 리스트가 실린 해외 블로그들, 혹은 못다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아래에 링크로 남기며 글을 마친다. 아, 그리고 저는 윌렛, 불릿 버번 짱짱 맛있다고 생각합니다(진심) 욕하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틀린 정보는 언제든 지적해 주세요 헿.



*요약: 비유를 하자면, 많은 식당에서 공장 생산 김치를 공급 받아다가 마치 자기네들이 만든듯이, '3대째 내려오는 비법'으로 만들어 '숨쉬는 전통 옹기에서 숙성'했다는 둥의 선전 문구를 붙여 판매하고 있음. 물론 같은 공장에서 김치를 만들어도 고추 작황에 따라 고추가루 맛이 다 다를 수 있으며 (배추 절임, 속 재료, 발효 등등의 변인이 많으므로) 배치batch 별로 김치맛이 다 다를 수 있고, 공급받은 이후 각 식당에서 추가 숙성으로 익히는 속도 등을 조절할 수도 있겠지만 과연 그 차이가 얼마나 유의미할 것인지 의문. 물리적인 맛의 차이는 차치하더라도, 사업적 관점에서 소비자 기만이 있다는 것이 요지.



The Serious Eats Guide to Rye Whiskey (링크)

List of Brands source from MGP Ingredients (링크)

The Complete List of American Whiskey Distilleries & Brands (링크)

The Biggest Distillery You've Never Heard of is in Lawrenceburg, Indiana (링크)

Oh, It's that Whiskey from Indiana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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