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nie Walker Green Label, aged 15 years (750ml, 46% ABV)
새로 옮긴 회사에선 '일반인'인척을 하고 있다. 술 좋아하냐 물으면 그냥 술자리는 좋아하는 편이에요, 하며 가볍게 웃어 넘기고 회식자리에서 이 술 저 술에 대한 잘못된 이야기가 들려도 그냥 가만 고개를 주억이며 내 잔을 홀짝이는 정도. 누군가를 기만하려는 건 아니고, 그저 술을 좋아한다고 숨김없이 밝히다 보니 가는곳마다 술꾼으로만 통해서다. 나는 술 말고도 좋아하는 것, 관심있는 것이 많은데 항상 술로만 나를 표현하게 되는 상황, 술이 내 정체성이 되는 게 아쉬웠다. 게다가 술을 좋아한다고, 혼자서도 종종 마신다고 하면 알 수 없는 시선이 따라오는 경우도 있다. 그 한가지로 뭔가 평가절하되는 느낌. 술을 좋아하는 거지 아무하고나 술 마시는 걸 좋아한다는 게 아닌데.
아무튼. 소맥을 얼큰하게 마시고 들어오는 길엔 꼭 풍미가 확실한, '맛있는' 술이 아쉽다. 하지만 다음날 출근을 생각하면 바에 가기엔 시간이나 취기나, 여러모로 부담스럽다. 그럴 때 요긴한 게 집에 묵혀둔 위스키. 모두가 잠든 조용한 집을 조심스레 밝히고 외출복 차림으로 주방에 서서 도수 높은 술을 한 잔 따르면 얼추 그럴싸한 분위기가 난다. 마치 차가운 도시의 시크한 커리어 우먼(???) 같은 느낌. 그리고 이런 기분엔 달큰한 버번이나 매캐한 아일라보다 블렌디드 위스키에 손이 제일 많이 간다. 발렌타인, 올드파처럼 비슷비슷한 가격대의 술 중에서도 특히 내가 좋아하는 건 조니 워커. 왜냐면 일단 병이 제일 점잖고 예뿌다. 게다가 살짝 달고, 살짝 매캐하고, 살짝 가볍고, 여느 위스키의 특징이 둥글게 누그러져 있지만 빠지는 데가 없다.
보통 블렌디드 위스키라 함은 여러 증류소에서 만든 술을 섞었다는 건데, 조니워커 그린은 싱글몰트만을 섞은 '블렌디드 몰트' 위스키다(싱글몰트 위스키: 단일 증류소에서 보리만을 가지고 만든 위스키. 예: 글렌피딕, 맥캘란, 발베니, 라프로익 /블렌디드 위스키: 증류소의 개수/곡물 종류의 제한 없이 만든 여러 위스키를 섞은 술. 예: 발렌타인, 조니워커, 로얄살루트, 페이머스 그라우스) 섞인 술들이 최소 15년 숙성급이라 레드(숙성년수 미표기), 블랙(12년 숙성)보다 조금 비싼 편. 주재료Key Malts는 탈리스커, 링크우드, 크라겐모어와 쿨일라인만큼 무작정 나긋나긋하고 달달한 술은 아니다. 마른 담뱃잎과 넛멕 풍의 향이 깔려있어 아예 초심자가 마시기엔 호불호가 조금 갈릴 것 같은 정도. 질감은 눅진, 끈끈하다기 보단 그냥 딱 중간 정도로, 적당히 부드러운 편.
내가 느끼기엔 1997년에 Pure Malt라는 이름으로 처음 출시된 이후 그린 라벨로 이름을 바꿔 끊겼다 재출시되었다하며 뜨문뜨문 나오는 동안 버전마다 맛 차이가 좀 있는 것 같아 이러쿵 저러쿵 말하기가 좀 뭐하다. 예전 바인하우스에서 맛본 Pure Malt는 와, 정말 둥글둥글 부드럽다는 느낌이었고 그후 바를 돌아다니며 한 잔씩 먹어본 그린 라벨은 버전마다 당도 차이가 꽤 나는 것 같았다. 취기나 컨디션 탓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집에 내가 올해 사서 따놓은지 3개월 가량 된(ㅎㅎㅎ) 병을 기준으로 맛을 묘사하자면: 넛멕 넉넉히 올린 에그녹이 생각나는 달콤한 향에 막상 입에 털어넣으면 예상했던 것보다 담백한 맛. 바닐라, 시나몬이 처음 떠오르긴 하지만 삼킬때부턴 재ash, 피트의 느낌으로 이어진다. 혀와 입천장을 톡톡 쏘는 느낌과 더불어 입에 남는 잔향도 굳이 따지자면 '남성적'인 편.
가격은... 음, 공덕을 지나다 이마트에 들러 충동적으로 구입했는데, 오래되서 기억이 안 난다... (댓글로 제보해주신 분에 따르면 6만원대라고 하네요) 아무튼 돈이 아깝지 않은 술. 구하기도 쉬워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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