왈텈+탱텐 셰이킹 @상수 곤조
나는 딱히 가리는 술이 없다. 아일라 위스키, 드라이 셰리 와인, 깨끗한 진 베이스 칵테일, 고소한 스타우트, 담백한 막걸리, 향긋한 쌀 소주... 달지만 않으면 모두 잘 마시는 데다 각종 내장 음식을 좋아하는 탓에 초록병 희석식 소주까지도 군말없이 홀짝이는 편이다. 그에 반해 남자친구는 싫어하는 술이 참 많다. 특히 샤르트뢰즈, 압생트, 진 등 허브류의 술을 질색해서, 매번 내게 '그거 진짜 맛있어서 먹는 거야?' 내지는 '아... 저거 진짜 힘든데...'라고 빼꼼히 한마디씩하다 내가 기분이 상해 한참 투닥거린 날도 많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뒤론 꿍하니 쳐다만 보던 남치니, 어느날부턴가는 입맛의 차이를 좁히겠다며 샤르트뢰즈와 진이 들어간 칵테일을 찾아 마시기 시작했다.
탱텐+라가불린 스터 @경리단 트웰브
술이 맛있으면 맛있는 거고, 맛이 자극하는 자의적인 상상이나 감각을 그냥 순간순간 즐길 뿐인 나와 달리 남자친구는 술을 한층 자세히, 분석적으로 맛보는 데다 의미 부여도 잘 한다. 작년 겨울 내 생일날엔 몰타르에서 바텐더님께 그냥 알아서 한 잔 주세요, 했는데 프랜시스 알버트의 변형이 턱 나왔다. 남자친구가 항상 구비해 놓을만큼 좋아하는 라가불린 16과 내가 기본 티셔츠처럼 제일 만만히 생각하는 탱커레이 텐. 위스키 베이스 칵테일은 으레 비슷한 맛이 나는 것들을 동글동글 잘 어우러지게끔 섞는 것이 대부분인데, 부드럽고 우아한 훈연향의 라가불린과 가벼운 레몬류의 향으로 쨍하게 찌르는 탱커레이 텐을 섞으니 아주 재미있는 맛이 나왔다. 잔을 들면 피트향이 폴폴, 살짝 묽은듯 예쁜 라가불린으로 시작해서 상큼한 진의 맛으로 끝나는데 이어지는 구간에 두 술이 섞이지 않고 뒤엉켜서 엎치락 뒤치락, 화려한 맛을 낸다. 남치니는 깨달음을 얻은 표정으로 '역시 정반합이 답이야!'라고 평했다.
아휴 하여튼 유난이라고, 장난스레 타박을 했지만: 감각적인 인상 외엔 술에 별 감정적 가치를 두지 않는 나도 사실 프랜시스 알버트만큼은 '우리의 술'쯤으로 생각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진, 네가 좋아하는 라가불린, 제각각인 것들의 묘한 조화, 이런 것도 있긴 한데 일단 그냥 너와 내가 둘 다 좋아하는 유일한 칵테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처음 만난 장소인 곤조에서 처음 소개해 준 술이기도 하다. 높은 도수와 독특한 맛 덕에 아무때나 쉽게 손이 가는 술은 아니지만, 기념일처럼 특별한 기분으로 놀러나가는 날엔 챙겨마시고 싶은 칵테일이 됐다.
샤르트뢰즈까지 몇 방울 똑 떨어트린 완성형 > < @광화문 코블러
칵테일의 이름은 프랭크 시나트라이고, 그의 본명인 프랜시스 알버트로도 통용되지만 내가 알기로 실존인물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가끔 보면 프랭크 시나트라가 즐겨 마시던 술이라고 설명을 하기도 하던데 사실무근. 곤조에서 설명을 듣기론 일본의 바텐더가 프랭크 시나트라를 떠올리며? 만든 칵테일이랬고, 만화 바텐더에도 등장한 적이 있다고 했다. 재료가 왜 하필 와일드 터키와 탱커레이인지, 어쩌다가 둘을 섞을 생각을 했는지 궁금해 좀 자세히 알아볼랬지만 구글엔 자료가 많지 않았고, 그나마도 대부분 일어였다.
흠, 아무튼. 워낙 마니악한 술이라 아무나 좋아하긴 힘든 맛이리라 예상하는데, 진과 위스키를 단독으로 홀짝이는 술꾼에겐 한 번쯤 시도해보길 권하고 싶다. 원래 전해지는 레시피는 와일드 터키 + 탱커레이를 1:1로 저어 만드는 건데, 변형을 가하는 재미가 있다. 셰이킹하면 아무래도 더 고르게 섞이고 차가워서 마시기가 수월했고, 위스키를 아일라로 바꿀 경우엔 한결 더 복잡하고 강려크해진다. 아일라/진의 온갖 조합으로 실험을 해본 남자친구의 증언으로는 위스키는 라가불린과 쿨일라처럼 풍성하고 달달한 것이, 그리고 진은 적당히 맵고 찌르는 느낌의 저렴한 것이 잘 어울린다고 했다. 탱커레이 텐과 봄베이, 비피터 24 등이 괜찮았고 보타니스트, 몽키47 등의 섬세한 진은 영 아니었다고.
술과 칵테일이 시들한, 권태로운 술꾼에게 추천하고 싶...은데 한 가지 주의할 점은 가격. 바에서 주문하면 보통 진과 위스키 각각 한 잔씩의 값을 더해 계산하기 때문에 꽤 비싸다. 저렴한 편인 바에서도 2만원은 훌쩍 넘었고, 4.4만원까지 받는 곳도 봤다. 언제 한 번 디스틸에서 4.4만원이 찍힌 것을 본 후론 필히 가격을 물어보고 주문하게 됨... 가격 이야기가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저렴하기로는 바코드를 따라갈 곳이 없고(남자친구가 여기서 온갖 조합으로 실험한 덕에 싸장님이 노하우도 생겼을듯), 로빈스 스퀘어에선 라가불린을 써도 2만원대이면서 아주 맛있다. 아무래도 해괴한 술이다보니 모르는 바텐더들도 있어 가끔 주문할 때 멋쩍은 것과 비싼 가격만 빼면 아주 매력적인 술. 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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