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gavulin 12yo 200th Anniversary Bottling (700ml, 57.7% ABV)
병째로 집에 두고 마시는 위스키는 뚜껑을 닫아 놔도 시간이 지날수록 맛이 달라지는 걸 느낀다. 여기에 그때그때 다른 몸 상태, 기분까지 가세하면 난리가 난다. 집에서 병 단위로 마셔도 이런 지경인데 각각 다른 바에서 한 위스키를 서너 잔 마셔보고 그 위스키 맛을 안다고 할 수 있나... 고민도 많이 했지만 내 결론은 '테이스팅 노트고 뭐고 의미 없다'기 보다는 사람마다, 혹은 기분 따라 같은 술도 다 다르게 마실 수 있구나, 라는 거다. 같은 술을 마시고도 제각각인 내 기록이나, 나랑은 너무 다른 인터넷의 맛 후기를 보고 멘붕인 적이 많았는데, 이제는 걍 누가 뭐래든 내 소감을 적어 올리기로 다짐했다.
라가불린 200주년 기념판 요거는 (병 단위로 마신) 위스키 중에서도 맛이 많이 변하는 편이었다. 처음 땄을 때와 마지막 잔을 마실 때는 물론이고, 한 잔 따라 놓으면 공기와 닿는 10, 20분 사이에도 맛이 극적으로 변한다. 갓 따랐을 때의 첫인상은 찌르듯 날카로운 피트향에 혀에 닿는 달콤함. 피트향이 감돌면서 말린 과일 느낌으로 꽤 달다. 그러다 에어링이 충분히 되면 단맛이 마치 코리브레칸 마냥 견과류 풍의 꼬소하고 기름진 맛으로 변한다. 워낙 라가불린답지 않게 가볍고 찌르는 단순한 맛이어서 공기에 풀어졌을 때가 훨씬 맛있었다.
라가불린 16이 꽃, 과일, 피트향이 모두 풍부하고 섬세한 것에 반해 200주년 한정판 12는 훨씬 단순하고 가벼웠다는 점에서 인상이 그닥이었다. (색도 허여멀건한 게 안 이쁘다) 이 자체로 맛없진 않은데... 개성도 부족하고,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을 생각하면 값어치를 못한단 느낌이다. 도수만큼은 기특하게 CS로 57.7도. 가격은 대만 면세점에서 약 16만원. 딱히 라가불린을 수집하는 마니아가 아니라면 그냥 패스해도 될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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