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즈 앤 지거, 서촌
예전, 처음 가본 바의 술장을 훑다가 왠지 로알드 달이 연상되는 이름에 끌려서 시켜본 위스키. 술기운에 부푼 마음이라 그랬는지, 배pear가 연상되는 상큼한 향이 로알드 달처럼 '재치있다'는 인상으로 남았다. 조 말론의 향수 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가 떠오르기도 했고. 테이스팅 노트를 적어놓지 않아 아쉬웠던 차에, 각기 다른 바에서 세 잔을 마시고 후기를 남긴다.
일단 특색이 강렬한 위스키는 아니다. 가볍고, 달콤하고 마시기 쉽다. 꿀에 절인 배 같은 달콤한 향에 시트러스도 조금 깃들어있고, 벨벳처럼 보들보들 부드럽다. 맛은 나무의 옅은 속살 빛이 생각나는 정도. 아주 집중하면 끝자락에 떠오르는 미세한 피트향이 입에 잔잔히 남는다. 그러니까 글렌피딕같이 나무나무한 위스키에 비하면 나무 맛이 옅었고, 달콤하고 마시기 쉬운 글렌고인에 비하면 상큼한 느낌이 있었다. 도수는 무난한 43도.
자주 가는 바에서 운 좋게, 병에 남은 마지막 잔과 새로 뜯은 병의 첫 잔을 비교 시음해볼 기회가 있었는데 둘은 다른 술이라고 생각될 만큼 달랐다. 갓 뜯은 달위니에서는 (매니저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화장품 아세톤의 시리고 달달한 향이 있었다. 맛도 마지막 잔이 재미없게 뭉근뭉근 부드러웠던 것에 비해 새 잔은 살짝 날 선 느낌. 뜯은 지 오래되지 않은 달위니가 훨씬 개성 있고 마음에 들었다.
술은 마실 때의 기분, 몸 상태, 개인 취향에 따라서도 맛이 다 다르다지만 뜯은 지 얼마나 되었는지, 보관을 어떻게 했는지에 따라서도 이렇게나 다를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약간의 회의가 들기도 했다. 원래도 맛을 정확하게 표현하겠다는 욕심은 없었지만, 테이스팅 노트는 그냥 모두에게 다르다는 술이 나에게 준 인상을 정리하기 위해 쓴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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