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사둔 시락으로 마신 보드카 토닉 ㅎㅎㅎ.
작년 말부터 바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아, 홍대에 10년이 다 되가는 바가 있다는데... 했었고 그 뒤로 코블러에 자주 가면서는 아 로빈 사장님 본진(????)에 가봐야지... 했는데 알고보니 학부생 때 보드카 마시러 몇 번 와봤던 곳이 여기 로빈스 스퀘어였다! 당시에 주위 가게에 비해 그레이구스가 저렴했다는 기억이 있는데, 아니나다를까 여긴 여전히 술이 저렴한 편이다. 어떤 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가격을 가장 먼저 꼽는 건 좀 실례같지만서도, 여긴 훨씬 편안한 마음으로 술을 마시게 된다. ㅎㅎㅎㅎ. 이건 허리띠를 졸라매야하는 나같은 사람들에겐 발걸음을 자주하게 되는 확실한 강점. 술꾼 친구의 증언에 따르면 심지어는 베이스를 아일라같이 비싼 술을 (2온스씩) 써도 업차지가 없거나 굉장히 적다고 한다. 항상 쎈 술을 마시는 (나같은) 술꾼들, 그리고 칵테일로 이것저것 모험하기 좋아하는 (나같은) 사람들에겐 정말 어마어마한 매력이다.
올해의 칵테일. 아니 인생 칵테일...
그렇다고 가게가 안 예쁜 것도 아니고, 구비한 술의 종류가 적은 것도 아니고, 칵테일이 맛 없는 것도 아니다. 얼마전 여기서 매니저님이 내 입맛에 맞춰 만들어주신 윗 사진의 즉석 칵테일은 정말 엄청났다. 드라이한 셰리와 진을 1:1로 섞고, 샤르트뢰즈를 조금 끼얹은 후 허브향이 강한 비터를 첨가한 칵테일인데 와...... 셰리의 쿰쿰한 향과 샤르트뢰즈의 야생 풀밭같은 향이 엎치락뒤치락 입안을 휘감고, 집중해서 음미하다보면 진의 토닉워터같은 맛, 알 수 없는 향신료의 자극에 샤르트뢰즈의 단맛까지 심심할 새 없이 조금씩 느껴진다. 남자친구는 비오는 날 풀밭에서 맨발로 뛰놀고 좋은 향이 나는 뽀송한 수건으로 발 닦는 느낌이라고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앞으로 매번 첫 잔으로 마시고 싶은 칵테일. 매일 생각나는 지경이라, 요새는 가는 곳마다 셰리 있냐고 묻고 있다.
가격과 칵테일 맛을 빼고도 장점으로 꼽을 것들이 많다. 다양한 주종, 뜬금없지만 맛있는 돈까스 안주, 테이블 많고 널찍한 가게. 수용 인원이 많은 만큼 바빠서인지 이곳의 성격인지, 바텐더와 관계를 맺고 시시콜콜 이야기를 나누는 곳은 아닌 것 같았지만 만사가 귀찮고 피곤한 요즘, 그마저도 마음에 들었다. 무심한 와중에 샤르트뢰즈와 셰리/진을 좋아하는 입맛을 기억해주신 것만으로 감사할 따름. 아무튼 여긴 싫어할 수가 있나, 싫어하는 사람이 있나 싶은 곳이다. 근처 지날 땐 항상 들러 한 잔이라도 마시고 싶다.
주소: 마포구 와우산로 69 지하 1층, 전화번호: 02-6085-6421
가격: 칵테일 약 1.5~1.8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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