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구 느낌 그대로, 실내도 온통 나무로 뚝딱뚝딱 만든 편안한 분위기다ㅎㅎㅎ.
꽃집 안에 입구가 숨어있는 술집도 있고, 공중전화 부스가 (회원만 이용가능한) 엘레베이터 인 곳도 있고... 소위 '스피크이지'를 컨셉으로 한 바들 중 입구를 숨기기 위한 장치가 과한 곳들은 딱히 정이 안 간다. 일단은 술 맛이나 서비스와는 무관한 컨셉을 잡는 게 내 취향이 아니라, 입구에서 의도한 그 재미에 끌리질 않는다. 게다가 그렇게 비밀스러운 곳들은 아무래도 누군가의 소개로, 알음알음 손님을 얻게될 텐데 업장에서는 구매력이 보장된, 혹은 바 문화를 즐기는 손님을 확보할 수 있어서 좋을 것 같긴 하지만 아무래도 좀 폐쇄적인 것 같다. '그들만의 리그' 같다는 느낌... 1
이미 많은데다 또 계속 생겨나는 바들 가운데 여긴 다르다, 라고 느끼게 할 만한 특성을 살리는 건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갖출 수 있는 술도 제한되어 있고, 다들 실내 분위기나 장식으로 모험하지도 않는다. 결국 물리적 환경을 잘 갖추고 나면 칵테일을 만드는 솜씨와 손님에게 제공하는 경험이 그 바를 차별화하는 요소가 되는데, 몰타르는 그 점에서 독특한 곳이다. 몰타르를 꼽을 때면 보통 먼저 '문을 두드린 후 인원 확인을 해야 들어갈 수 있는 입구'와 '사진촬영 금지'를 떠올릴 거다. 스피크이지, 그러니까 비밀스러운 컨셉을 잡는 것으로 내게 이정도는 성가시거나 허세스럽지 않았다. 특히 사진이 남지 않으므로, 이곳에서의 경험은 온전히 이 안에만 남는다(여긴 와이파이도 중계기도 없다). 손에 쥘 수 있는 이미지대신 감각과 기억에 의존하게 되는 만큼 <지금>, <여기>를 풍성히 즐길 수 있었다.
보통 바에서는 일행과 내밀한 대화를 하기가 어렵다. '바bar'를 '부드럽게tender' 하는 바텐더와의 상호작용이 있는만큼 대화가 분산되기도 하고, 사적인 대화가 바 넘어로 들릴 것 같아서 신경 쓰이기 때문. 그런데 몰타르는 주문을 받고 술을 내주는 것 이외엔 손님에게 별 관심이 없다. 여기서는 관계를 맺지 않으려는 이 무관심이 달갑다. 붐비는 날에만 가서인지 직원분들이 모두 바쁘게 돌아다니는 NPC 정도로만 인식되어서(ㅎㅎㅎㅎㅎㅎ;) 일행과 거릴낄 것 없이, 하고싶은 이야기를 다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왁자지껄한 가게의 손님들이 내는 말소리는 매번 적당한 장막이 되어줬다. 내가 묻힐 수 있는 정도의 아늑한 소음. 얼마 전 생일 밤엔 포근한 소음막을 두르고, 좋아하는 사람이 앉은 의자 언저리에 무릎을 슬쩍 갖다대면서 아, 정말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적당한 무관심, 온전히 이곳에 집중하게 하는 은근한 차폐 효과와 더불어 몰타르가 진짜 좋았던 데는 칵테일 맛이 가장 크게 한몫했다. 어느 분이 만들어주셔도 추천부터 완성물까지 하나같이 훌륭했다. 염장한 올리브 통조림으로 만든 더티 마티니가 맛있었던 건 여기가 유일하고, (기름에 절인, 덜 짠) 올리브를 짓이겨서 거른 후 셰이킹한 그레이구스 베이스의 더티 마티니도 깔끔하고 맛있었다. 에비에이션, 라스트워드, 불바디에 같은 클래식 칵테일만 잘 나오는게 아니고, 라이 위스키 대신 라가불린에 탱커레이 텐을 셰이킹한 프랭크 시나트라처럼 듣도보도 상상하지도 못한 맞춤형 변주와 추천도 탁월했다. 입맛이 세분화, 구체화될 수록 (철저히 주관적으로) 맛없는 칵테일을 접하기도 쉬워지는데, 실망스러운 술이 하나도 없이 주문한 모든 잔이 맛있었던 건 몰타르가 처음이다. 아, 생일 케이크를 조금 나눠드렸는데 맨입으로 칵테일을 계속 맛봐야한다며 바로 안 드시고 넣어두는 것도 인상깊었다. 엄청 프로같으심...b
그 외에 특기할만한 건 꽤 많은 양의 LP판과 비싸보이는 EV 스피커. 그리고 천장의 환풍? 냄새 흡입?기. 짭짤한 고기내가 강한 베이컨 안주 메뉴가 있는데, 그 냄새가 사방팔방 눌러붙지 않도록 천장 가득 달린 환풍기가 돌아간다. 그리고 정식 수입되는 술만 쓰신다는 점. 넓은 매장 벽면을 모두 술병이 채우고 있어서 당연히 온갖 귀한 술이 다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그래도 내게 중요한 셰리가 발데스피노 아몬티야도 한 종류이지만 있어서 만족. 아무튼 내게는 마냥 좋은 술집이다. 처음엔 그냥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바이니까, 나도 덩달아 좋아하고 싶다는 마음이었는데 그 공간에서 나눈 이야기가 좋고, 칵테일이 하나같이 맛있다보니 반할 수 밖에 없었다. 아, 돈 많이 벌어서 남자친구 맛있는 술 많이 사줘야지.
만취 금지, 사진 금지, 또 뭐가 있더라...
하지 말라는 것들이 꽤 많지만 매력적인 곳.
주소: 용산구 독서당로 73-4, 전화: 070-4288-7168
가격: 칵테일 1.8-2.3만원, 커버차지 5천원.
- Speak easy. 금주법 시대에 간판 없이 몰래 몰래 영업하던 술집을 언급하며 사람들이 '조용히 말해(speak easy)'라고 하던 것에서 유래한 표현. 지금은 간판도 없고 입구도 숨겨져있고, 그런 술집들을 '스피크이지' 바, 혹은 '스피크이지' 컨셉, 아님 다 줄여서 '스피크이지'라고 부른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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