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 라스트 워드
18-19시, 퇴근 시간대에는 서울 올라가는 길이 막힐 때가 많아 선뜻 버스 타기가 망설여진다. 그렇다고 붐비는 지하철을 탈 기운도 없으면서 무작정 회사를 뛰쳐나온 어느날, 걷는 내내 칵테일 생각이 계속 맴돌아서 이곳 앤젤스 쉐어로 향했다. 반듯한 공간에서, 섬세한 칵테일을 마실 수 있는 바들 중에서도 콕 집어 여기에 오고싶었다. 이전에 방문했을 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듯한 정중한 응대와 판교 특유의 모든 게 새것 같은, 세련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었다. 오픈 직후 한산한 바에 들어와 앉으니 바텐더님은 굳이 온도를 한 번 더 확인하고 따끈한 물수건을 내주셨다. 지친 날에는 이런 작은 배려가 엄청 마음에 크게 들어온다.
도대체 어느새에 나는 투박한 첼시 부츠와 해그리드 같은 머리카락 꼴로도 아무렇지 않게 화려한 바에 앉는 아줌마가 되었나. ㅠㅠ. 거기에 더해 왜 바와 술에서 위안을 찾는 알콜중독자가 된걸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깐 세월과 내 처지가 야속했지만 칵테일 한입으로 모두 싹 지웠다. 투명한 바이올렛 리큐르를 쓴 에비에이션이 넘 맛있었다. 차가운 진 바탕위로 (굉장히 주관적 감상인) 야생 블루베리향, 새콤함을 꾹 누르는 단맛... 일상생활 중엔 접할 수 없는 맛과 향으로 정성껏 취향에 맞게 만든 술은 위안이 된다. 허공과 술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홀짝홀짝 술을 마시니 사무실에서 혹사당한 눈과 뇌의 긴장이 그제서야 풀어졌다.
역시 진베이스 칵테일인 행키팽키. 이거 달지 않으면서 은근 시원한 멘톨 느낌이 난다.
넓고 반듯한 바, 타이에 자켓을 갖춰 입으신 바텐더님의 점잖은 환대, 깔끔한 칵테일에 더해 엔젤스 쉐어가 좋았던 건 센스있는 로고. 천사의 날개 위로 찍힌 물방울 하나가 숙성 중 증발하는 위스키라는 내용을 명료하게 드러냈다. 센스있는 디자인은 항상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이 로고로 만든 두 종류의 코스터도 예뻐서 한참 구경하다 들은 건 여기 사장님이 CI 등을 디자인 하시는 분이라고. (금속 재질 코스터 진심 사고 싶음...) 짭짤한 견과류와 과하게 달지 않은 초콜렛 기본 안주도 좋고. 다 마시고 일어설 때 즈음 farewell drink로 주시는 커피도 좋았다. 입 안을 차분히 정돈하는 것에 더해 끝까지 돌봄받는 느낌. ㅎㅎㅎㅎㅎ. 시설부터 무형의 서비스까지, 바 운영 전반의 틀이 일관적으로 잘 잡혀있는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스타일의 칵테일들을 많이 추천받았는데, 퇴근길에 종종 들려 차근차근 마셔볼 생각이다.
(아, 판교역까지 운행하던 셔틀은 중단되었다고 하고, 술은 정식 수입되는 것만 쓰신다고 한다. 신박한 위스키 탐방은 다른 곳에서 하는 걸로!)
주소: 성남시 분당구 판교역로 10번길 12-6, 전화번호: 031-702-3551
가격: 커버차지 5천원, 칵테일 1.5-1.8만원선(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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