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프트 웍스의 백두산 헤페바이젠(L)과 금강산 다크에일(R)
서울대 친구를 만나기로 한 김에 요새 핫하다는 샤로수길에서 약속을 잡았다. 밥 먹고 갈 맥주집으로 후보를 추려놓고 고민하다가... 가격도 적당하고 무엇보다 여러 양조장의 맥주를 한 자리에서 맛볼 수 있는 엘리펀트 키친으로 결정. 널찍하고 깔끔한 매장의 한쪽에는 빔프로젝터로 소리 없이 영화가 돌아가고 있었고, 큰 창을 모두 열어놓으니 선선한 밤공기도 잘 들어서 분위기가 좋았다.
일단 첫 번째로 맛본 건 크래프트 웍스(Craft Works)의 맥주들. 금강산, 남산, 지리산 등의 우리나라 산 이름이 들어간 맥주를 서울 시내 여기저기서 많이 보긴 했는데 실제로 마셔보는 건 처음이었다. 많이 유통되는 만큼 기대가 컸는데, 웬걸 일단 ▶금강산 다크에일(4.5%)은 실망스러웠다. 커피/다크 초콜렛 향이 있긴 한데 그것 빼고는 별 맛이 없었다. 맛이 밍밍하단 인상에, 질감도 까끌거린다 싶을 정도로 가벼웠다. 맥아의 단맛은 거의 없었고 알 수 없는 새콤한 맛이 미세하게 스쳐지나다 끝 맛은 또 씁쓸하게 남았다. 살면서 맥주를 남겨본 적은 손에 꼽는데, 정말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이 맥주는 넘 맛이 없어서 옆으로 치웠다. 이것보단 ▶백두산 헤페바이젠(4.5%)이 낫긴 했지만 이것도 맛있단 인상은 아니었다. 밀맥주 특유의 새콤한 빵같은 맛에 약간의 달달함. 끝. 후에 다른 맥덕 친구에게 물어보니 크래프트 웍스의 맥주는 매장마다 맛이 많이 다르다고 했다. 품질 관리도 편차가 있는 데다 배치(batch)마다 맛이 조금씩 변하는 것 같다고. 품질 관리의 문제인지, 양조장의 문제인지는 직영점에서 나중에 다시 한 번 맛을 봐야 알겠지만... 어쨌든 아쉬웠던 부분.
강릉 버드나무 브루어리의 발틱 포터(L)와 국화 바이젠(R)
크래프트 웍스의 맥주 맛은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이 집이 싫지 않았던 건, 버드나무 브루어리와 더부스The Booth의 맥주도 갖추고 있었기 때문! 특히 작년 강릉에 생긴 버드나무 브루어리의 맥주는 서울에서 맛보기가 어렵다고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우연한 기회에 마주쳐서 반가웠다. 게다가 지난달 주류박람회에서 동생이 가져온 이 양조장의 홍보물 디자인이 유독 예뻐서 눈여겨봤던 참이었음. 사진의 잔을 잘 들여다보면 우리말로 버드나무가 쓰여있는데, 로고에 한글을 이용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전반적으로 맥주 맛의 인상은 '?????' 하는 느낌ㅎㅎㅎㅎ. ▶발틱 포터(7.5%)는 커피 풍의 향과 곡물, 견과류의 향이 강했는데 왠지 많이 발효된 듯한, 탄산이 많을 것 같은 느낌이 같이 들었다. 물론 금강산 다크에일보다는 훨씬 나아서 그냥 조용히 감사한 마음으로 마셨지만 버드나무에 대한 기대가 컸어서 그런지, 풍미나 질감을 따져봤을 때 만족스러운 정도는 아니었다. 친구의 국화 바이젠(5.3%)은 정말 신기했던 맛. 꿀 탄 생강차 맛?이 났다. 국화를 넣었다는데 이게 국화의 맛인가... 탄산은 강한 편이고, 밀맥주다운 부드러움은 있었다. 그치만 내게는 생강처럼 느껴지는 특유의 향에 단맛, 새콤한 맛이 났는데 이 조합이 내가 아는 밀맥주와는 넘나 달라서 약간 혼란스러웠다. 좋게 말하면 모험적이고 재미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아직 추구하는 맛의 갈피?를 아직 못 잡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참 잊고 있다가 1-2년 정도 후에 다시 맛봐야겠다고 생각ㅎ
투올x더부스의 Wit My Ex
엘리펀트 키친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좋아요'하면 제공되는 샘플러 한 잔! 생맥주 리스트에서 아무거나 고를 수 있다b 내가 고른 건 ▶투올x더부스의 윗마이엑스ㅡ인데 이날 마신 맥주 중에 가장 맛있었다. 씁쓸+화사한 홉의 풍미가 강조된 밀맥주였는데, 열대과일 맛 탄산음료의 향도 은은히 풍겼고 바디감도 적당히 입에 감기면서 부드러워서 마음에 들었다. 마시자마자 그래 맥주가 '이 정도 풍미는 있어야지'하는 마음이 들면서 맛없는 맥주로 받은 내상을 치유하는 것 같은 느낌.
맥주는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가게의 인상이 괜찮았던 건 널직하고 여유로운 분위기에, 적당한 가격. 그리고 한 자리에서 맛볼 수 있게 국내 소규모 양조장의 맥주를 조금씩 골라서 파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다른 블로그를 뒤적여보니 사람들이 찍어온 맥주 메뉴가 시기별로 많이 다른 게, 생맥주 라인업을 자주 바꾸는 것 같다. 이왕 자주 바꾸는 김에, '국내 수제 맥주'만을 '엄선'해서 판다는 특성을 더 잘 살려서 선택지를 좀 더 늘리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주소: 관악구 관악로 14길 15 2층, 전화번호: 02-878-0077 ㅡ 매월 둘째/넷째주 일요일 휴무
가격: 생맥주(420-500ml) 7.5-8천원, 감자튀김류 0.8-1.3만원, 피자 1.2-1.3만원, 마약옥수수 6천원.
(20시 이전 방문할 경우 주문 가능한 식사메뉴:) 파스타류 8-9천원, 핫도그 5-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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