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베이스에 얼그레이 시럽과 퍼넷, 안티카 포뮬라가 들어간 시그니처 메뉴인 '젠틀맨 어프로치'
-와 먹다가 찍어 볼품이 없지만... 커버 차지가 안 아까운 기본 안주
점심먹고 가위바위보로 아이스크림 내기를 했던 어느날. 다행히 꼴지를 면해 헤헤호호하며 편의점 앞에서 아이스크림 껍질을 까던 중이었는데 어쩌다 고개를 들었는지, 아무튼 눈에 몰트 바 배럴이라는 글자가 들어왔다. 아... 배럴이라는 바가 삼성에 있다고는 들었는데 이렇게 가까운 줄은 몰랐네 하고 생각보다 외관이 허루하네 했던 게 첫인상. 너무 회사 근처라 뭐 갈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바로 회사 근처라서, 가까워서 금새 방문하게 됐다. 피곤하고 짜증나고 붐비는 지하철도 막히는 버스도 싫은 평범한 날, 정신차려보니 홀리듯 바 문을 열고있는 나를 발견. ㅋㅋㅋㅋㅋㅋ.
페니실린!
들어서니 가게가 엄청 넓고 바도 큰데, 퇴근시간 직후라 그 큼지막한 공간을 혼자 누릴 수 있는게 좋았다. 마침 또 사정이 있는지 한 분만 가게를 지키고 있었던 날이라 정말 조용했다. 두 잔 청한 칵테일은 굳이 따지자면 아쉬운 점을 꼽을 수 있는 맛이었지만, 혼자 생각에 빠질 수 있는 그 시간이 만족스러워서 크게 개의치 않게 되는 신기한 경험. 혼자 왔다고 더 신경써서 말을 많이 걸지 않는 게 좋았고 주문과 관련된 술 얘기만 하는 게 좋았다. 뭐 어떤 점 때문이라고 딱 꼽긴 어려운데 그냥 어색하지 않고 편안했다.
평소 좋아하는 바의 요건은 1순위가 무조건 맛인 내겐 신기한 경험...
좋은 인상덕에 두세번 더 방문하다보니, 가게 전체를 그렇게 조용히 홀로 쓸 수 있는 건 드문 경우인 걸 깨달았다. 눈 닿는 거리에 스탭도 손님도 항상 있어 실망(?)하고 금새 일어나려던 차였는데... 칵테일이 맛있어서 홀로 연거푸 다섯 잔을 마시고 한참을 눌러앉게 됐다. 정말, 첫 잔은 맛없으면 일어나야지, 라는 마음으로 사이드카를 시켰는데, 직관적으로 아주 맛있었다. 집중하지 않고 대충 마셔야지란 마음을 먹어도 거슬릴만큼 시거나, 싱겁거나, 묽거나, 알콜맛이 나거나, 너무 달거나한 경우를 아직도 많이 접한다. 그런데 그런 아쉬움일랑 눈꼽만큼도 없이 그냥 맛있었다. 맛이 어쩌고 저쩌고 생각 안 하고 싶고 그냥 계속 마시고 싶을 만큼.
두 번째 잔도 다른 곳에서 마신 롭로이의 변형을, 베이스(달모어12)와 대략의 방향('버무스도 쌉쌀한 종류였고 비터도 많이 넣은 것 같았어요')만 언급하며 비슷하게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는데 아, 똑같이 한 잔 더 마시고 싶을 만큼 찰떡같이 맛있게 나왔다. 다른 곳에서도 같은 주문을 매번 하고선 자주 실패하는 터라 특히 맛있고 놀라웠다. 마시는 내내 감사한 마음이 샘솟아서 성함 석 자 외우려 명함까지 받아왔다. 내 이름은 안 밝히면서 남의 이름 인터넷에 올리기가 좀 뭐시기해 석자를 쓰지는 못하겠지만 갑 매니저님... 넘모 좋다!
삼성동 박보검(???????)님의 사이드카. 이것도 맛있었다.
(요새 드는 생각인데 클래식 칵테일 시킬 때 나는 무슨 맛이 좋다,
무슨 베이스가 좋다, 같은 말을 일절 안 하는 게 오히려 성공률이 높은 것 같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빼자면 여긴 위스키 종류가 정말 많고, 테이블 자리도 많고, 손님들 나이대가 높은 점이 특기할 만하지 싶다. 근처의 직장인이 주 고객이어선지 홍대에서는 보기 힘든 사오십대까지 연령대가 다양하다. 오전 11시부터 연다하고, 낮부터 초저녁까지는 몇몇 위스키를 대폭 할인해 판매한다는 점도 재미있다. 요새 새로 생기는 바들만큼 화려하거나 예쁘지는 않지만 대신 얼추 점잖은 느낌. 근방에 바가 전무하기도 하고, 노련미 낭낭하신 매니저님의 칵테일도 맛있고, 위스키가 많은 캐릭터도 확실하니 코엑스 근처에 볼 일이 있는 술꾼들에게 가볍게 추천할 만하다.
요새는 이상하게(?) 사진기 안 꺼내고 우아하게 마시고 싶어서,
아님 후다닥 대충 찍고 마치 안 찍은 것 마냥 홀짝이고 싶을 때가 많아서
몇 장 없는 사진이 좀 그지같다...
업장에 정이 없어서 막 찍은 게 아님을 밝힘. ㅠㅠ.
주소: 강남구 삼성로 104길 10 이호빌딩 2층, 전화번호: 02- 568-2589
가격: 커버차지 5천원, 칵테일 2-2.5만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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