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첫 잔: 요새 정말 구하기 힘들다는 야마자키.
가죽향도 나고 피트향도 나고 짭짤 달콤한, 그런 강렬하고 복잡한 위스키를 마시고 싶어서 집에 가는 길에 들른 뿡갈로↖. 그치만 탈리스커말고는 아는게 없으니, 무작정 '피트향이 나는 위스키'로 두어잔 추천을 부탁드렸다. 첫 잔은 무난한 것을 마셔야 둘째 잔부터 향의 차이를 느끼기 쉬울 것 같다는 조언에 ▶야마자키 12년 산으로 시작! 발베니처럼 향긋한 타입의 위스키였는데, 바닐라/코코넛/꿀처럼 약간 진하고 달콤한 향이 났다. 맛도 역시 달달한 편인데, 무겁기만 하지 않게 어딘가 새콤한 시트러스 계열의 느낌이 있었다. 전반적으로 향도 맛도 무게감도 무난~한 위스키. 하지만 바텐더 분께선 이렇게 균형잡힌 무난함도 쉽지는 않은 거라고.
피트향이 나는 것들로 추천받은 보모어Bowmore 12와 라가불린Lagavulin 16.
▶보모어 12는 술을 훈제한 것 같은? 특유의 피트 향이 나면서도 신기하게 맛은 달달한 편이었다. 약간의 상큼함도 있고 바디감도 가벼운 편. 라가불린에 비하면 어렴풋한 꽃향기가 나는 것도 같았다. 보모어를 테이스팅 해보고 조금 더 강렬하다는 ▶라가불린 16을 골랐다ㅋㅋㅋ. 보모어에 비해 단 맛이 덜하고, 조금 더 찐득했다. 점도도 더 높고 곡물?...같은, 잘 모르겠는 맛이 여러겹 있었는데 한 잔으론 파악이 어려웠다. 암튼 한 모금 넘기고 나서도 입에 스모키한 향이 은은하게 남는게 마음에 꼭 들어서 이건 남대문에서 한 병 들여오기로 결심. 심지어 이건 병도 이쁨...
첫인상이 엄청난 라프로익Laphroaig 10...
코에 가까이 가져오는데 강렬한 소독약 냄새?에 깜짝 놀랐던 ▶라프로익 10. 친구는 딱 해부학 실습실 냄새라면서 좋아했다. .... 계속 두고 맡으니 익숙해져서 그런지 소독약같은 냄새는 크게 안느껴지고 강렬한 피트향이 났다. 라가불린/보모어에 비해 곁가지 향들은 정리하고 확실히 피트향에 집중한 느낌. 짭짤한 살라미 같은 맛도 났고, 무엇보다 놀랄만큼 오랫동안 입안에 스모키한 향이 남았다. 바텐더님은 거기에 가벼운 질감이 매력이라고 하시면서, 굴에다가 한 테이블 스푼 정도를 얹어서 먹으면 맛있다고 하셨는데 정말로 군침이 돌았다... 아무튼 여러모로 캐릭터가 확실하고 재미있는 위스키라, 바에서 몇 번 더 마시게 될 듯 하다.
글렌모렌지 시그넷 Glenmorangie Signet
바텐더분이 제일 좋아하는 위스키라며, 조금 따라주신 ▶글렌모렌지 시그넷. 병 디자인부터 예사롭지 않았는데 실제로 엄청나게 비싼 술이었다. 헤헤헤ㅎ헿ㅎ. 바나나/초콜렛처럼 부드럽고 달달한 향이 났는데 신기하게 맛의 중간엔 나무? 흙??? 같은 느낌이 있었다. 술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딱 한 모금이어서 잘 파악을 못했으나 매력적이었던 술. 그치만 넘 비싸서 또 맛볼 일이 있을 진 모르겠따...
마지막 잔, 헤네시 VSOP.
일어나기 아쉬워서 시켜본 꼬냑 한 잔, ▶헤네시 VSOP. 새로 뜯은 것에서 한 잔, 마지막으로 조금 남은 병에서 나오는 한 모금을 비교해보라고 같이 주셨닿ㅎㅎ. 그치만 이 즈음엔 이미 감각이 무뎌져서... 많이 산화된 쪽에선 알콜 기운이 날아가고, 맛이 좀 옅다는 느낌만 받았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위스키보다 달다... 정도밖에 못느낌. 깨끗한 칵테일로 마무리했으면 더 좋았을 뻔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과일로 만든 술은 개봉후 가급적 빨리 비우는 게 좋다는 교훈을 얻었으니 만족ㅎㅎㅎ.
사실 거의 반년 만에 들른 거였는데 정말 신기하게, 전 남자친구를 헤어지고 처음으로 마주쳤다. 들어와서 바에 앉았는데 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어, 하고 말을 거는 옆자리의 남자가 전남친이었다. ㅎㅎㅎㅎㅎㅎㅎ ????? ...... 무슨 생각을 할 새도 없이 그냥 일단은 놀랍고 반가워서, 나란히 앉아 웃으며 이야기하다 왔다. 음, 덕분에 있는 줄도 몰랐던 케케묵은 앙금이 풀린 것 같다. 덤덤한 영화의 바람직한 엔딩처럼, 여기서 모든 게 잘 끝난 것이려니, 하고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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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네시 보니 몇주전 호프집에서
Vsop가 있길래 시켰더니...꼬냑잔이 없어서
화를 낸적이 기억나네요. 근데 사장님이 가게에
2시간 가까이 비우셔서 알바하시는 분이
어떤 술인지 모른다고 ㅠㅠ 2시간 멍때리고 기다린 것이 화가 났었나 봅니다. 2차로 온 자리였는데...
같이 온 사람들은 맥주 마시고..
전 맥주는 선호하지 않아서 안 먹고 2시간 ..ㅠ
야마자키 12년 참 잘 만들었는데..
18년 가격은 이미 안드로메다라...가성비에서
제외한 술이네요. 금전 여유 많으면 먹겠지만..
그가격이면 다른 좋은 술들도 더 많아서
이젠 범접하기 어려운...ㅠ
산토리사가 물량이 많이 딸리는지
NAS만 자꾸 출시하고 가격은 더 올리고...ㅎ
그래도 있으면 먹겠습니다.ㅠ
비밀댓글입니다
위스키 관련 글들 찾아보고 있었는데, 마지막 전남친 일화가 넘나 좋아서 댓글 남깁니다ㅋㅋ
정말 무슨 영화 엔딩같네요.
연인 사이를 정리할 때 이런 엔딩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문득 정 반대로 엄청 끈질기고 끈적했던 어떤 바에서의 저의 다른 이별 장면이 떠오르네요.